백석 시인
ㆍ작성자 : 활판인쇄박물관  ㆍ작성일 : 2017/11/02   ㆍ조회수 : 54  

 

백석 (1912~1996). 본명은 백기행으로, 평안북조 정주군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시를 매우 좋아하여 그 이름을 따 백석(白石)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친 후에 일본에서 1934년 아오야마학원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하였다. 1934516일자 조선일보에 산문 이설(耳說) 귀고리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가와 번역가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36120일에는 그간 조선일보조광에 발표한 7편의 시에, 새로 선보이는 26편의 시를 보태어 시집 사슴을 출간한다. 당시 시집 사슴의 가격은 2원으로, 다른 시집에 비해 2배가량 비싼 책이었다. 경성부 통의동에서 자비로 100권 한정판으로 찍어내어, 나중에는 상당히 구하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백석은 이후 1948학풍창간호(10월호)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내놓기까지 60여 편의 시를 여러 잡지와 신문, 시선집 등에 발표했으나 정작 시인 자신은 사슴외에는 시집을 더 이상 출간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작품에 평안도 방언을 비롯하여 여러 지방의 사투리와 고어를 사용했으며 1948년 이후에는 많은 활동을 하지 못했다. 백석은 당시의 조선 땅(오늘날의 남북한)과 만주 일대를 유랑하며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시는 한민족의 공동체적 친근성에 기반을 두었고 작품의 도처에는 고향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이 담겨 있다.

 8.15 광복 후에는 고향인 평안도에 머물렀다. 북한에서는 주로 아동문학에 천착하였으나, 1958년 무렵 부르주아적 잔재로 비판받아 협동농장 축산반으로 쫓겨났고, 1962년 이후로는 북한 문단에서 사라졌다. 남한에서는 백석이 북한의 시인이라는 이유로 백석 시의 출판이 금지되었으나 1987년 월북 작가 해금 조치 이후로 백석의 많은 작품들이 활발히 소개되고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주목받고 평가되고 있다. 평북 지방을 비롯한 여러 지방의 사투리와 사라져가는 옛것을 소재로 삼아 특유의 향토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뚜렷한 자기 관조로 한국 모더니즘의 또다른 측면을 개척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