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도시 파주에 지난달 29일 출판도시활판인쇄박물관이 개관했다.
문학 계간지 ‘아시아’ 주간인 방현석 작가를 비롯한 문인과 출판·인쇄인들이 힘을 모은 출판인쇄박물관은 디지털 인쇄의 발전과 함께 사라진 활판인쇄 관련 장비와 시설을 수집하고 전시한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주조기와 국산 활판인쇄기를 비롯한 각국의 인쇄기, 재단기, 제본기 등의 장비를 구비했다. 보유한 활자는 납 무게만도 17t이 넘고 개수도 무려 3267만여개에 이른다.
17t의 활자와 자모, 주조기는 우리나라 최후의 활자제조공장이자 판매점으로 김태인 선생이 운영하던 전주의 제일활자에서 기증받았다. 김태인 선생의 동료이자 친구이며 국내 유일의 현역 주조장인인 정흥택 선생이 참여해 이곳에서 후진을 양성하게 된다.
또 활판인쇄기와 재단기 등은 45년 전통의 대구의 봉진인쇄소에서 옮겨왔다. 인쇄물을 접고 묶는 접지기, 페이지를 차례로 맞추는 정합기 등 제본에 필요한 장비들은 충무로와 부산 등 곳곳에서 공수했다.
활판인쇄박물관은 앞으로 한국 전통의 활판인쇄 장비·기술과 인쇄물을 수집하는 한편 견학·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관람객들은 직접 활판을 사용해 책을 제작하고 책에 이름을 새겨넣을 수도 있다.
이와 함께 판매용 책도 만들 예정이다. 실제로 지난 두 달여간 박물관을 시범운영하면서 개관에 맞춰 첫 시집도 출간했다. 제작번호가 찍힌 300권 한정판 한영대역 한국대표시선 ‘시를 새기다’다. 시집은 전체가 활판과 동판을 사용해 인쇄됐으며 인쇄에서 전통 제본술인 오침제본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백석 등의 시가 담겼다. 2권은 고은 시인의 시들로 채워지는 등 1년에 3권 정도 펴낼 예정이다. 이 책들은 아마존 인터넷서점에서도 판매한다.
방현석 활판인쇄박물관 운영위원은 “우리나라가 활판인쇄 종주국임에도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지금이라도 활판인쇄 고유의 문화를 되살려 나갔으면 한다”면서 “속도에 저항하는 방식이 인쇄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 속에서 문학을 한다는 자체가 속도에 저항하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파주출판도시 활판인쇄박물관 안에 전시돼 있는 납활자들. 출판도시활판인쇄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