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경기 파주 출판도시에서 개관한 활판인쇄박물관을 통해서다. 아시아출판사가 주축이 된 가운데 주조장인 및 인쇄장인 등이 참여해 옛 활판인쇄 장비와 시설을 갖춘 활판인쇄박물관이 이날 개관했다.
활판인쇄박물관은 금속활자를 만드는 주조기와 국산 활판인쇄기를 비롯한 각국의 인쇄기, 재단기, 제본기 등 실제 가동이 가능한 장비와 시설을 갖췄다. 보유한 활자는 납 무게만도 17t이 넘고 개수도 무려 3267만여개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단순 전시물을 관람하는 것을 벗어나 전통방식으로 실제 책 제작이 가능하다. 납을 녹여 활자를 주조하는 활자공장, 활자를 골라 판을 짜서 찍는 인쇄소, 페이즈를 맞추고 묶어 책을 만드는 제본소, 종이를 만드는 공장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갖추고 있다.
17t의 활자와 자모, 주조기는 우리나라 최후의 활자제조공장이자 판매점으로 김태인 선생이 운영하던 전주의 제일활자에서 기증받았다. 김태인 선생의 동료이자 친구이며 국내 유일의 현역 주조장인인 정흥택 선생이 참여해 이곳에서 후진을 양성하게 된다.
- 【서울=뉴시스】옛 활판인쇄 장비와 기술을 사용해 한 자, 한 자 찍어내고 수작업으로 엮어 만드는 책이 부활한다. 아시아출판사가 주축이 된 가운데 주조장인 및 인쇄장인 등이 참여해 옛 활판인쇄 장비와 시설을 갖춘 활판인쇄박물관이 29일 경기 파주 출판도시에서 개관했다. 2016.11.29(사진=출판도시활판인쇄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지난 두 달여에 걸쳐 박물관을 시범운영하면서 개관에 맞춰 첫 시집도 출간했다. 제작번호가 찍힌 300권 한정판 한영대역 한국대표시선 '시를 새기다'다. 시집은 전체가 활판과 동판을 사용해 인쇄됐으며 인쇄에서 전통 제본술인 오침제본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백석 등의 시가 담겼다.
고은 시인은 활판으로 시집을 만들 수 있도록 시를 무료로 내주면서 두 번째 책으로 고은 시집도 펴낼 예정이다.
방현석 활판인쇄박물관 운영위원은 이날 서울 세종로 인근 한 식당에서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직지를 만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 종주국인데도 다른 나라들보다 빨리 활판인쇄가 사라지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함께 했다"며 "1년에 세 권 정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또 활자인쇄 책을 만든 이유에 대해 "속도에 저항하는 방식이 인쇄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 속에서 문학을 한다는 자체가 속도에 저항하는 일이 아니겠느냐"며 "이런 작업도 그동안 문학이 수행해온 특별한 기능인데 그 기능이 사라졌을 때 문학이 설 자리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 【서울=뉴시스】아시아출판사가 주축이 된 가운데 주조장인 및 인쇄장인 등이 참여하고 옛 활판인쇄 장비와 시설을 갖춘 활판인쇄박물관이 29일 경기 파주 출판도시에서 개관했다. 2016.11.29(사진=출판도시활판인쇄박물관 제공) photo@newsis.com
그만큼 제작과정은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4명의 작업자들이 모여 300권을 만드는 데 약 1달이 걸렸다. 1권당 3만원의 판권료, 종잇값 등을 계산하면 다 팔아도 오히려 적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복원하는 자체에 대한 의미가 더 크다는 설명이다.
방 위원은 "서점에서 한 달 되면 반품할 정도의 수명을 지닌 책은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가져가고 싶은 책들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물관에서는 판매용 책을 제작하는 것 외에 일반인과 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자신만의 시집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박물관은 한영대역 서적을 판매해온 아시아 출판사의 기존 판매루트를 통해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에서 이번 시집을 비롯한 전통 활판인쇄책을 전 세계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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