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쫓아가는 건 불가피하겠지만 우리 삶 속에서 문학을 하는 건 일정하게 속도에 저항하는 일입니다. 작금의 삶의 속도와 다르게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문학이 출현한 이래 지금까지 수행해온 특별한 기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속도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저항하는 방식의 활판인쇄박물관을 추진한 겁니다.”
소설가인 방현석(54?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사진) ‘아시아’ 주간이 독특한 일을 벌였다. 활판인쇄 과정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시설을 갖추고 체험자들이 직접 책까지 만들 수 있는 ‘출판도시활판인쇄박물관’을 파주 출판도시에 세웠다. 납 무게만 17톤이 넘는 3200만자에 이르는 활자를 전주 ‘제일활자’에서 가져왔고, 인쇄에 필요한 기계는 대구 ‘봉진인쇄’에서 넘겨받았으며, 기타 장비들은 광주 충무로 부산 등지를 뒤져 모았다. 한지를 만들고 전통방식으로 제본하는 기술까지 적용했다. 이곳에 가면 누구나 콘텐츠를 골라 활자를 뽑아서 직접 활판인쇄로 책을 만들 수 있다.
“인쇄 기술을 이어받아 살려가려는 차원이 아니라 활자문화, 문학, 문장에 대한 감각과 기억을 되살리고 복원해가는 과정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 과정은 우리 문학을 새롭게 하고 창작의 질을 높여가는데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시 15편을 제공하고 그 중 9편을 골라 책을 만들게 함으로써 읽어보고 선택하는 과정을 중시한 거죠. 3200만자에서 알맞은 서체와 글자를 골라 심는 과정이야말로 문장을 감각적으로 체험하는 귀한 경험일 겁니다.”
‘살아 있는’ 활판인쇄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 이육사 이상화 김영랑 김기림 박인환 심훈 임화 오장환 이용악 백석 이경재 등의 시를 ‘시를 새기다’라는 표제로 안선재의 영역까지 곁들여 활판인쇄와 전통제책방식 오침제본으로 펴냈다. 300부 한정으로 책마다 일련번호가 매겨졌다. 2권은 고은 시인이 기부한 시들로 채워진다. 1년에 3권 정도 이런 방식으로 펴낼 예정인데 2권은 시집, 1권은 아시아 출판사 K픽션 시리즈인 영한대역 단편소설 중 하나로 만들 예정이다. 이 책들은 아마존 인터넷서점에서도 판매한다.
방현석 주간은 “너무 빠른 속도로 바뀌어가는 우리 시대에서 문학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지 자문하다가 내 방식대로 쓰고 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면서 “다르게 쓰고 다르게 만드는 방식에 많은 이들이 동참해서 도시마다 이런 작업들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